훈련소에서 읽은 책 후기

최근 3주동안 훈련소에서 읽은 책들 몇개 후기를 적어본다.

  •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 히가시노 게이고 본인이 자신이 쓴 글 중 최대의 역작이라 평가하는 글이라고 한다. 내가 읽어봤을 때도 정말 잘 쓰인 추리소설이라는 점에 대해 동의한다.
    • 스토리 플롯이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하게 짜여져 있으며, 결론 역시, 나는 가상에 창작물에 대해 사회적인 정의는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사회적인 정의에 부합한다. 등장인물의 구성 역시도 물리/수학도인 내게 흥미로운 요소였다.
    • 원래 추리소설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매우 잘 읽었고, 그런 만큼 추리소설을 읽지 않던 사람들에게도 적극 추천하고 싶다.
  •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 그렇게 막 재밌지는 않았다. 작가가 통상적인 사회적 일념과 부합하지 않는 다양한 배경의 인물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 정도가 들었다.
  • 사이버전의 모든 것, 박동휘
    • 내용은 많고 잘 구성되어 있으나 기술적인 내용보다는 여러 국가별 사례와 그에 대한 어느정도 상세한 소개에 관점이 치중되어 있다. 내가 기대하던 내용은 아니라 일부 실망한 부분이 있지만 상식을 쌓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짐작하기로 같은 내용을 담은 책이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가치가 있는 책이다.
  • 미사일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손승찬
    • 미사일에 대한 많은 자료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희귀성이 높은 책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내용을 잘 구성했다거나 깊은 내용이 담겨있다기보다는 정보와 스펙을 나열하는 위키에 더 가깝다. 공학도로서 기대하고 읽어본 책인데, 그 깊이가 깊지 않아 실망한 부분이 있다.
    • 무기 개발이 소화기를 배치하는 것과 같다는 말은 인상적이었다. 쓰지 않는 게 가장 좋지만, 필요할 때는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군의 개발 프로세스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얼마나 느릴지 알게 된 것도 좋은 점이었다.
  •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리사 펠드먼 배럿
    • 뇌가 하나의 복잡계로서 기동하며, 기존의 철지난 여러 가설들이 맞지 않음을 강조하는 책이다. 철지난 가설들로는 인간의 뇌만 다른 동물들에 비해 특수하며 월등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가설과 뇌의 여러 부분별로 역할이 명확히 나뉜다는 가설이 있다. 특히 전자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하며 이런 가설이 지금까지 수많은 강연자에 의해 사실인 것처럼 언급되는 것은 마음 편한 인간우월주의 때문이라는 것을 꼬집는다.
  • 수학자의 생각법, 마커스 드 사토이
    • 옥스퍼드대 석좌교수인 만큼 저자의 전문성은 의심할 바가 없고, 무엇보다 저자가 수리과학부에서 볼 법한 수학에 미친(좋게 말하면 몰입한) 사람이라 좋았다.
    • 과거 수많은 수학자들이 어떻게 사고했는지 재미있는 일화들과 같이 소개한다. 읽으면서 여러 번 웃었다. 고등학교 수학 정도의 지식이 있다면 문제 없이 읽을 수 있기에, 수학을 좋아하는/좋아하게 하도록 고등학생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이다.
  • 대량살상 수학무기, 캐시 오닐
    • 잘못 설계된, 특히 피드백이 존재치 않고, 광범위하고 강력한 효과를 주는 수학적 모델이 얼마나 경제/사회 등 여러 분야 전반에 걸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지, 또한 이러한 잘못된 모델의 예시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설파하는 책이다.
    • 다만 무작정 이런 모형들에 대한 비판만을 가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읽으면서 들었다. 기존의 것에 문제를 제시한다면, 대안 역시 제시해라. 물론 문제 제시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문제를 지적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저자의 글에는 마땅한 대안/해결책 등이 부재해 있으며, 이러한 대안/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는 저자가 말하는 "나쁜 모형"은 앞으로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 그리고 나는 그러한 현상이 불가피하리라 본다. 먼저 "나쁜 모형"에서 "나쁜"의 정의가 엄밀하기보다 포괄적이며, 또한 각 이익 주체(개인/가계, 회사, 국가 등)가 효과성과 자신의 이익 대신 다른 지표를 우선시해야 하는 이유와 동기가 항상 부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어떤 목적함수를 최적화하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 물론 그래도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항상 필요하다고 본다. 단지 이러한 사람들의 의견이 과도한 규제와 실체 없는 "올바름"을 강조하는 상황을 이끌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 제임스 처서/올리버 우버터
    • "도표"가 얼마나 창의적으로 구성될 수 있으며 어떻게, 어떤 것들을 강조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굉장히 인상 깊었다.
    • 특히 초반부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롭고, 훈련소 내에서 내 초심을 되찾도록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 나이팅게일이 장미도표 하나를 통해 말로는 설득이 되질 않던 사람들을 설득한 것처럼, 자신의 주장을 좋은 형태로 정리하고 표현하고 강조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혼자서 이런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테크닉을 발전시키니는 쉽지 않은데, 누군가 이러한 내용에 대해 소개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언바운드, 조용민
    • "21세기의 문명은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배운 것을 일부러 잊고, 다시 배우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 앨빈 토플러
    • 위 문구는 이 책에서 나오는 문구이다. 또 나는 읽으면서, 책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아래 문구도 생각났다.
    • "Always aspire to be indispensible where you are" - 서울고등학교 현관
    •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흡수만 하는 게 아니라, 다각적인 관점으로 해석하여 서로를 연결하는 것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 "성장"을 주제로 하는 좋은 책이다. 내용은 매우 좋고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다.
    • 다만 인공지능 분야에 있어 기초적인 기술 명도 잘못 서술하고, 근거 없는 예측을 자신 있게 써두는 등, "너비와 깊이"를 모두 강조하고 있으나 정작 기술 부분에서 "깊이"는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게 보였다.
    • 초코파이 이야기는 웃기지도 않았는데,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초코파이의 초코 함유량이 얼마인지"라는 문제의 해답이 "초코/초코파이=1/파이"라는 것이고(초코를 약분한단다), 이것을 '수리 능력 1등이 한국의 중학생'들이 풀었다는 것이다. 이 사례를 "창의적 유연성"이랍시고 칭찬한다. 음...
    •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팀원에게 WHAT뿐만 아니라 WHY까지 설명해야, 목표가 ill-defined되어 있어도 어느정도 align되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 분자 조각가들, 백승만
    • 수많은 의약품과 관련하여, 긴 시간 이전부터 이들이 어떻게 개발/발전되어 왔으며 어떠한 양상으로 화학/생물학/식물학 등 여러 분야가 각각 발전되다가도 합쳐지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재미있고 읽고 쉬우면서도 동시에 압축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 개인적으로 흥미로우면서도 충격이었던 부분은 임신 후 42일 이내에 단 한 알(50mg)이라도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하면 십중팔구로 기형아가 생기는 것이라는 부분이다. (208p) 이것에 대한 이유는, 탈리도마이드는 세포 내 단백질 분해 시스템을 교란하여 빠르게 분열하는 조직에 부정적인 효과를 준다. 그래서 다발 골수증 치료에 쓰여 암세포의 성장을 저해하는 용도로 쓰였는데, 태아의 42일 역시도 세포 분열과 혈관 생성이 가장 활발한 시기이기 때문에 치명적인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매우 유감인 부분은, 이 약이 상용화 될 시기에는 산모와 태아 사이에서 의약품을 조심히 써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식이 전혀 없었으며, 그러한 부분에 대한 검토 역시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그 위험성이 알려지지 않은 채 널리 사용되어 1만명에 달하는 기형아 출산을 이끌었고, 이 중 50%과 1년 이내 사망했다고 한다. 이 내용들을 읽소어 왜 임산분에게 특별한 의학 조치를 시행해야 하는지 그 원인까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 리더의 생각 읽기, 유석문
    • 좋은 글이지만 읽고 구체적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여러 글로벌 대기업의 상세한 사내문화/업무방식에 대해 소개하고 그것들의 의도한 설계에 대해 알려주는 글이 있으면 좋겠다.
    • 이 책에서 추천해준 다른 책이 몇 권 있었다.
      • 게으르다는 착각: 자신을 게으르다며 책망하고 있다면 읽어보면 좋다고 추천했다.
      • 리더의 생각: 이 책의 저자가 추천한 건 아닌데 같은 저자의 글이다.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 1%를 읽는 힘, 메르
    • 저자가 자신의 인사이트에 매우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어느정도 믿을만하다고 나에게는 보였다. 다만 책의 내용에 대해 내가 아는 지식이 없어서 구체적인 판단이 힘들었다.
    • 여기서 나온 내용들에 대해 자신이 직접 검토해보며 여러 지식과 인사이트를 얻는 것이 매우 좋은 접근 방식일 것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