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빛나거나 미쳤거나
예술, 철학에 있어 유명한 인물과 과학, 물리에 있어 혁신을 일으켜낸 아인슈타인 등을 동일선상에 놓고 서술하는 것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서술하는 바에 따르면 천재는 우수한 이성적 논리적 사고능력에 더불어, 이를 압도하는 지식에 기반한 직관으로 성취를 이루어낸다고 한다.
과학 연구는 논리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특히 발상 등에서) 지식에 기반한 직관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까지는 동의한다. 하지만 과학에서 성취를 이룬 인물과 예술, 철학에서 성취를 이룬 인물을 같은 카테고리에 넣고 분석하는 것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과학의 권위는 자연에 있다. 자연현상과 배치되는 것을 자기 마음대로 주장하는 사람은 과학자가 아니라 그냥 유사과학자다. 그리고 과학 이론은 자연현상을 논리적,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수학 지식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과학, 철학에 있어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성격적으로 비슷한 양상을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두 분야에서 업적을 이룬 사람들에게는 그 기질에 있어 분명히 차이점이 있을 것이고, 두 분야 자체가 차이가 굉장히 크다. 이들을 동일선상에 나열해서 동시에 서술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예술은 철학보다 더더욱 과학과 차이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반부 내용 중 '이데아', 세상의 진리를 꿰뚫어 파악하는 능력이 천재들에게 있다고 했는데, 애초에 꿰뚫을 진리는 무엇인가? 직관적으로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고 성취를 이룬다는 그 발화 의도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무슨 절대적인 세상의 진리가 하나 존재하고 천재들은 그걸 꿰뚫는 것처럼 말하는데, 표현이 너무 거창하고 이상하다.
좌뇌와 우뇌의 기능을 절대적으로 분리하고 서술하는 등, 뇌과학적으로 논란이 있는 이분법적 사고도 거슬리나 그 발화 의도와 맥락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니 말을 삼가겠다.
202p에 나오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제대로 된 사유 없이 무지성으로 사회적 순응만 하다가는 악의를 가지지 않은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당연한 말이지만 평소에 그다지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경계해야 할, 염두에 두어야 할 하나의 개념으로 이해했다. 오히려, 소위 '평범'하고 '친절'하고 '순리에 맞게' 움직인다는 사람이 더 이러한 현상에 취약하다.
아래는 인상깊은 일부 문구에 대한 인용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인지 체계에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이유는 복잡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지성의 높이는 지적인 혼란과 모순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과도 관련이 깊다. 지적인 혼란 상태에 대한 인내심이 부족한 존재일수록 외부의 보편적 기준을 습관적으로 차용해서 사물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지적으로 게으른 사람들이 정신적인 안락함을 유지하는 손쉬운 방법은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비정상이라는 카테고리에 던져넣는 것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라는 것도 사실을 자신들의 좁은 인식 체계로 수용할 수 있는 것들만 진리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지성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모든 모순과 혼란에 대해 '비정상'이라는 딱지를 붙여놓는다. 이것은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변명의 수단에 불과하다. 이 점에서 광기는 비정상이 아니라 오히려 지적으로 게으르고 병든 사회에서 드물게 존재하는 부지런하고 건강한 정신일 수 있다. 천재들의 입장에서 미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은 비정상이다. 천재가 비정상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이들이 남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평범한 존재가 절대적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 세상에서 예외적인 존재는 비정상적인 존재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평범함이 곧 정상적인 것이고, 그것을 넘어서는 것들은 미친 것이다.
당신은 인생의 아주 단순한 비밀을 깨닫고 나면 훨씬 풍부한 삶을 살 수 있다. 즉, 바로 당신이 인생이라고 부르는 주변의 모든 것들은 당신보다 똑똑하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 스티브 잡스
그래서 창조적인 인물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필요한 지적 미덕은 무의식의 지성인 직관력과 의식의 지성인 이성 두 가지를 모두 갖추는 일일 것이다.
권위에 호소하여 논쟁하는 자는 지성을 사용하지 않는다. 기억을 사용할 뿐이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전체적으로, 내 의견과 같은 부분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동의할 수 없거나 거슬리는 부분도 많은 책이었다. 차라리 예술, 철학, 과학에 있어 '천재'를 세 부류로 분리하고 각각의 특성을 서술한 후에 공통점을 서술하였다면 모를까 셋을 하나로 묶어버리고 서술한 점은 굉장히 거슬렸다. 이 책에서는 천재를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합리적, 이성적 사고능력에 더불어 이를 뛰어넘는 창의적 사고와 직관력을 가진 존재로 묘사하였다. 일부분은 동의할 만하나 정말 이것이 천재를 설명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설명인지는 잘 모르겠다. 필자가 지나치게 인문학적 지식만을 가지고 있고 인문학적 설명에 치중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인상적인 점도 많았으나 실망적인 점도 많았던 책이었다.